지우 (전쟁없는세상 피망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게임에서도 정치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Sid Meier’s Civilization>이나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Europa Universalis>처럼 국가를 운영하는 게임에서 다른 국가와의 외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국가 내의 도시개발과 정부체제, 경제정책 등의 요소이다. 권력의 장악과 행사라는 정치의 본질은 플레이어의 주체성이 강조되는 게임의 특성과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국가 간의 전쟁이나 국제정치가 아닌 국내정치를 주된 내용으로 한 게임은 의외로 적다. 언어적 의사소통이나 정책결정과 같은 정치의 작동방식이 게임 플레이의 큰 동기인 흥미를 자극하기 어려운 탓일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더럽고 추잡한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도 정치게임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낮추는 요인일 것이다.

반대로 감각적으로 현란하고 영웅적인 행위로 흔히 묘사되는 전쟁은 게임의 가장 인기있는 소재 중 하나이다. 이런 게임에서 전쟁이 낳는 정신적 고통이나 민간인의 희생 같은 참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이 유독 게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심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정치게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난 글에서 다룬 이란 혁명을 배경으로 한 게임 <1979년 혁명: 검은 금요일 1979 Revolution: Black Friday>에 이어 몇 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고양이와 쿠데타

<고양이와 쿠데타 The Cat and the Coup>는 이란 최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의 일생을 그의 고양이 시점에서 본 다큐멘터리 게임이다. 플레이 시간이 15분 남짓한 아주 짧은 게임인데, 모사데그의 죽음부터 거꾸로 거슬러가는 스토리텔링과 퍼즐을 통한 진행 및 연출이 제법 괜찮다.

모사데그는 1951년 3월 총리로 선출된 후, 당시 영국 기업(지금의 BP) 소유이던 이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한다. 영국은 이것이 “세계 안보에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즉각 인근 지역에 군대를 파병한다.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양국의 협상을 통한 해결을 촉구했지만, 영국은 협상을 거부한다.

한편 1952년 집권한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영국에 동조적이었고, 1953년 8월 CIA가 사주한 파즐롤라 자헤디의 친왕정 쿠데타로 모사데그는 실각한다. 이후 이란 석유 산업은 미국과 영국이 지배한다. 모사데그는 재판에서 금고 3년형을 선고받고 석방 이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 196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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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 모하마드 모사데그의 죽음 장면

<고양이와 쿠데타>, 모하마드 모사데그의 죽음 장면

트로피코

<트로피코 Tropico>는 <심시티 SimCity>와 같은 도시 건설·경영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작은 열대 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운영한다. 다만 심시티에서 도시가 파산하지만 않으면 임기가 무한히 연장되는 것과 달리, 트로피코에서는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떨어지면 바로 게임오버가 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지식인, 종교인, 환경주의자, 군국주의자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인구집단을 만족시켜야 한다. 임금 수준과 주택 임대료 등을 직접 조정할 수 있고, 선포하는 법령과 농업·공업·관광업·무역업 중 어떤 산업을 육성하는지에 따라 이들의 지지가 달라진다. 냉전기가 배경이므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지 않으면 내정 간섭을 받을 수도 있다.

선거에서 꼭 정정당당하게 이길 필요는 없다. 개표 조작은 물론이요 반대파를 숙청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선거를 무기한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심하자.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 안락한 노후를 위해 비자금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은 기본이다.

트로피코 시리즈 홈페이지 

스팀에서 판매 중인 트로피코 시리즈 

열대 섬의 독재자가 되어 보는 게임

열대 섬의 독재자가 되어 보는 게임 <트로피코3>

데모크라시

트로피코가 독재국가를 신랄하게 비꼰 풍자의 성격이 강하다면 <데모크라시 Democracy >는 본격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도시 건설의 요소는 없고, 플레이어는 외교, 복지, 경제, 세무, 공공 서비스, 법무, 교통 분야의 법안과 정책을 통해 여러 사회지표와 유권자의 지지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권자는 사회주의자·자본주의자, 진보주의자·보수주의자, 빈곤층·중산층·부유층, 애국자, 종교인, 환경주의자, 운전자, 통근자, 자영업자, 노동조합원, 공무원, 농부, 소수민족, 부모, 청년, 퇴직자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집단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보수주의자 종교인, 부유한 사회주의자 청년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법안과 정책을 새로 도입하거나 조정하는 데는 정치력이라는 자원이 소모되며, 하나의 정책은 수많은 지표 및 인구집단과 상관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국가연금 정책은 퇴직자와 빈곤층은 지지하지만 자본주의자는 반대하고, 빈곤 지표를 감소시키며 사적연금에 악영향을 준다. 빈곤 지표의 변화는 다시 범죄, 인종갈등, 알코올중독, 홈리스 등의 지표와 사회주의자의 지지에 영향을 준다.

데모크라시3 홈페이지

스팀에서 판매중인 데모크라시3

다양한 정책과 지표, 인구집단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게임

다양한 정책과 지표, 인구집단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게임 <데모크라시3>

고전게임과 보드게임

그 밖에 고전게임으로는 각각 혁명 직후 가상의 중남미 국가와 후기 소련을 배경으로 한 1988년작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와 1992년작 <크렘린의 위기 Crisis in the Kremlin>가 있고, 보드게임으로는 독일 정당정치를 다룬 <디마허 Die Macher>와 닉슨과 케네디의 대결을 그린 <1960년 대통령 만들기 1960: The Making of the President>가 있다.

히든 아젠다 플레이
크렘린의 위기 플레이
디마허 소개
1960 대통령 만들기 소개

보드게임 .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보드게임 <디마허>. 사진출처: 보드게임긱

현실의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게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사회주의 지상낙원과 자본주의 유토피아, 민주적인 자유국가와 공포가 가득한 경찰국가 중에 무엇을 만들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이다. 게임을 한다고 세상이 당장에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은 단순히 현실에 지친 자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이 될 가능성을 얼마든지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