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운영위원)
매일 수많은 군 관련 이슈들이 쏟아진다. 사드 배치, 미·중 군사적 갈등 심화, 북의 미사일 발사, 매년 최대 규모를 갱신해내는 한·미 군사훈련과 무기구입비 등……. 마치 고성이 오가는 듯한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한반도 내부 문제를 넘어 거시적인 국제 정세를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한다. 사실 이러한 군사적 갈등 격화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형세에서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아래, 위로부터의 국가 간 군사동맹에 대항해 반기지운동을 펼치는 평화활동가들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이어 오고 있다. 특히 극동 최대의 미군기지가 밀접해 있는 두 지역(이 책에서는 한반도 역시 고립되어 있다는 맥락에서 ‘두 섬’이라고 표현)인, 한국과 오키나와가 그렇다.
한국과 오키나와라는 두 개의 축
아름다운 산호 해변과 옥빛 바다의 섬으로 익히 알려진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 왕국으로, 일본의 한 현이 아닌 독립 국가였다. 일본의 제국주의‧식민주의 침략으로 조선과 같이 식민지의 길을 걸었다. 현재 한반도와 오키나와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상 두 축을 담당하는 것과 동일하게, 당시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도 ‘대동아공영권’이 조선과 오키나와라는 두 축을 근간으로 확장된 역사를 지녔다. 저자는 이러한 지점에 주목, 이 책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에서 두 지역이 ‘식민주의의 양극’으로 기능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조어를 빌려 ‘가족유사성’의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다. 실제로 류큐는 식민지 조선과 달리 일본의 현으로 완전히 복속된 이후에도, 일본 본도인들에게 차별을 받았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조센징’이라 불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사람들도 ‘리키징’이라 불리며 구조적 차별을 겪은 것이다.

오키나와 국제대학 교정에 있는 불탄 나무. 미군 헬기가 이곳에 추락했었다. 미군 주둔으로 오키나와가 입은 피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부터 ‘두 섬’은 기지의 ‘섬’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군사적으로 오키나와 전체가 동원되었고 일본군의 타이완 출병이 이루어 졌으며, 조선 역시 유사하게 병참기지화 되어 이용당했다. 중일전쟁 당시 난징과 상하이로 날아갈 전투기의 출발지점은 다름 아닌 제주 폭격기지였다.
이 두 섬은 일본이 항복한 1945년을 기점으로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한국과 일본이 ‘한미동맹’과 ‘일미동맹’을 맺으며 공산주의 남하를 방어하는 전략적 기점으로 활용된 것과 또 다른 맥락으로, 오키나와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체계를 지탱하는 군사전략상 요충지가 되었다. 미군은 탱크와 불도저를 앞세워 오키나와 땅을 강제로 수용, 후텐마나 가데나 등지에 대규모 미군기지를 건설했다. ‘기지의 섬’화된 오키나와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 전화 속에 끊임없이 미국의 전략적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오키나와가 미군정 치하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다시 복속된 것은 1972년. 오키나와 사람들이 ‘전쟁의 영구적인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는 일본의 ‘평화 헌법’ 체제에 기대해 ‘핵도 미군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를 꿈꿨음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복귀 이후 일본 본도에 있던 미군 시설까지 오키나와로 대거 재배치해 버렸다. 현재 일본 국토의 1.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75%에 가까운 주일미군기지가 배치되어 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희생의 시스템
앞선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수개월 전, 오키나와에서는 일본군과 미군의 지상전이 전개되었다. 이 오키나와 전쟁으로 수많은 오키나와 주민, 조선인 군부, 일본군 ‘위안부’가 희생되었다. 일본군은 이들을 스파이 혐의로 몰아 학살하며 주민들 다수에게 일본 천황을 위해 명예롭게 죽으라며 ‘자결’하기를 강요했다. 명백한 국가 폭력인 이 오키나와전쟁 당시의 ‘강제집단사’는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이다. 최근 일본 우익 단체는 이러한 사실을 교과서 기술에서 삭제하라고 권고했으며 일본 문부과학성 역시 일본 과거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 아베 정권 이후 가속되고 있는 우경화의 결과이다. 여기에서도 어떤 희생의 유사성이 눈에 들어온다. 오키나와전쟁 당시 오키나와에는 위안소가 130여 군데, 그 중 70여 군데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로 일본 교과서에서 은폐·왜곡되고 있다. 믿을 수 없게도 2015년 박근혜 정부는 12‧28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통보’했다. 당연 선행되어야 할 진심어린 사과와 법적 배상의 내용이 담기지 않은 합의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한‧일 간에 협의된 이 내용에는 식민지 지배 책임의 문제를 향한 일본 정권과 우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베는 정권을 거듭하며 전전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숙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이는 저자의 지적대로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일본 내셔널리즘’의 연장에 다름없다. 제국주의 하에서 일어났던 오키나와의 강제집단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면 전후 표면적으로 ‘평화 국가’를 표방했던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진실되지 않으며 허구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유지·연장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안전보장(안보)라는 흐름 속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양국의 사드 배치, 일본 안보법제 개편으로 인한 자위대 문제 등이 미국 패권과 긴밀하게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 연장된 ‘한·일 군사정보협정’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고착화시키려는 하나의 전략적 맥락으로 모두 이어진다. 한‧일 두 국가는 미국 패권 아래 국가 간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위로부터의 동맹이 강해짐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연대 또한 견고해져야 하는 시점이다.

<두 섬> 표지
반식민주의와 반제국주의를 향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군사기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선 내용대로, 오키나와는 전전에는 일본의 방어하기 위한 기지로, 전후에는 일본 방어를 위한 군사기지 건설을 용인하고 배치되는 방식으로 이용당해왔다. 저자는 이를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일본 본도 사람들은 이를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미군기지가 파생시키는 위험은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희생’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희생의 시스템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군사기지가 들어선 곳곳, 대추리와 강정, 성주 등지에서 국가는 주민의 희생을 강제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저항을 무력화해 왔다. ‘안보’와 ‘국익’의 이름 아래 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은 무시하면서.
지금 오키나와에서는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재배치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캠프 슈와브 기지 옆 광대한 바다가 매립되고 있다. 매립되고 있는 것은 바다만이 아닐 것이다. 군사기지 없는 평화로운 섬을 꿈꾸는 우리의 마음도 국가 폭력에 의해 매장당하고 있다. 먼 식민지기부터 비극으로 점철되어 온 역사를 지닌 오키나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그 어떤 지역보다 투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던 그곳. 오키나와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향한 국제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의 부제를 ‘저항의 양 극’으로 정했듯이 이제는 ‘식민주의의 양 극’에서 벗어나 평화로 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