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징병제폐지를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결정되고 나서,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의견은 주로 현역병들과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이 논리는 넘기 힘든 어려운 산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의문이 존재한다. 징병제는 절대적으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한 것인가? 필경 그렇지만은 않을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한국의 바운더리를 벗어난 보편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 지면을 빌어 각국의 징병제는 어떻게 운용되고 있으며, 한국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 그리고 왜 한국은 전근대적인 징병제에 머물러 있는지를 조망하고자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 실제 시행되는 징병제의 형태들에 대해 어느정도 배경지식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타국에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징병제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70년 가까이 한국식 징병제 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징병제들도 “으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약간 길어지긴 하지만 징병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징병제란 무엇인가

흔히들 징병제는 태고적부터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의 군대의 이야기고, 근대 이후의 군대는 국민개병제를 통한 국민의 군대다. 전제 왕정을 전복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국가의 자발적인 군대가 민주공화국 군대의 시발점이다. 근대 시민혁명의 원조인 미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다. 다만 총력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량의 병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점점 징병제가 도입 확대 된 것이다. 요컨대, 왕정에서 신민을 징발하는 것과 공화정에서 당당한 주권자로서의 개인을 군대에 참여시키기 위한 징병제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근대 이후의 군대는 왕의 명령에 따라 병졸이 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지킨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곧 자유주의와 시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 고로 법에 의해 국민을 군대에 동원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국가는 모두 징병제 국가라고 보면 된다. 반면 국민을 군대에 동원 할 근거가 없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몇몇 국가들은 국민의 의무에 국방의 의무가 포함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다만 국방을 일종의 권리로 설정해 놓은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국가들이 바로 모병제 국가다.

 

세계 각국의 징병제의 실제

법적으로 징병제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징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국가들을 “자발적 징병제(Voluntary Conscription)” 국가라고 부른다. 또는 현실적인 이유로 징병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 일례로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징병을 하고 있지 않지만, 징병에 관한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다. 18세 이상의 모든 미국인 남성들은 Selective Service System에 등록해야 하고 유사시에는 징병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모병제 국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미국을 모병제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틀렸다. 독일 또한 2011년 이후 징집 중단 상태로 전환했을 뿐, 모병제 국가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경우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기는 하나, 개인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징병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대체복무제 자체도 사라져서 입영 거부를 처벌하지 않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들을 모병제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국가적 상황이나 군대의 TO 사정에 따라 징병 대상 인구 중 일부만을 징집하거나, 개인의 선택에 따라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징병제 국가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후에 설명할 국가들 중 자발적 징병제 국가들은 모병제가 아닌, 강제성 없이 자원에 의해 병력이 충당되는 징병제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글은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The Military Balance(2017)을 참고 하였음을 밝혀둔다.

 

각국의 징병제

자발적 징병제가 존재하는 국가겉으로 보기에는 모병제와 다르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국가가 징집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가.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 된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언제든 다시 징집을 할 수 있음.

국가 복무기간
크로아티아 2개월
덴마크 4개월에서 12개월
독일 지원자에 한해 23개월까지(강제 징병은 중단)
리투아니아 9개월
세르비아 6개월
에콰도르 데이터 없음

 

선택적 징병제 국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어서 징병 대상 인구 중 일부만 군대에 입대하는 국가 

국가 복무기간
튀니지 12개월
엘살바도르 12개월. 장교와 부사관들은 11개월
베네수엘라 30개월. 지역에 따라 차이 있음
베냉 18개월
카보베르데 14개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4개월. 예비군 제도도 있으나 기간 불명
기니비사우 국가 체계의 미비로 데이터 부족
니제르 24개월
세네갈 24개월
토고 24개월

 

징병제 국가들

(* 참고로 아래의 국가들 중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부분 30대 이상은 징집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발도상국 중에는 군 병력에 편입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고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국가 복무기간
오스트리아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지원에 의한 예비군 훈련 30일. 장교, 부사관 및 특기병들은 4~5개월 더 복무함. 전시 병력은 55,000명으로 인가되어 있음
키프로스 공화국 14개월. 북키프로스는 24개월. 북키프로스는 남키프로스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으면 국제적으로 미승인국으로 인식되고 있음
에스토니아 8개월. 장교와 몇몇 특기병(Specialist에 해당하는 상등병)들은 11개월 (현역병들은 특기병에 배치되지 않음)
핀란드 8개월. 장교와 몇몇 특기병(Specialist에 해당하는 상등병)들은 11개월 (현역병들은 특기병에 배치되지 않음)
그리스 모든 군과 병과 동일하게 9개월
노르웨이 최대 18개월. 현역병은 19세에서 21세 사이에 12개월가량 복무. 그 후 4~5개월 까지의 예비군 훈련을 받음. 예비군 훈련은 35, 44, 55세 또는 60세가 될 때까지 받음(계급과 기능에 따라 다름). 실 병력수는 입영 장정(후보생) 포함. 2015년에 여성에게도 징병제가 확대됨. 2012년 대체복무제 폐지로 개인의 의사에 따라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무도 부여하지 않음
슬로바키아 6개월
스위스 최대 46주. 19~20세에 18, 21, 25주의 훈련을 받음(군별로 다름). 20~30세 사이 10년에 걸쳐서 7, 6 또는 5주의 예비군 훈련을 받음(각 3주간).
터키 15개월. 실병력은 줄어들고 있음
아르메니아 24개월
아제르바이젠 18개월. 대졸자는 12개월
벨라루스 18개월. 대체복무 선택 가능
카자흐스탄 12개월. 폐지 예정
키르기스스탄 18개월
몰도바 12개월. 대졸자는 3개월
러시아 12개월. 현역병은 이제 24개월의 계약직 군 복무를 선택할 수 있음(한국의 전문하사 제도와 비슷한 개념)
타지키스탄 24개월
투르크메니스탄 24개월
우크라이나 24개월. 육군, 공군은 18개월. 해군은 2년. 2015년에 최소 징병 연령이 18세에서 20세로 변경됨
우즈베키스탄 12개월
캄보디아 18개월로 정부에서 입법 조치 되었지만 1993년부터 시행되지 않고 있음
중국 24개월. 군관구별로 다름. 징병을 하지 않는 곳도 있음. 대학생은 교련교육을 받음
북한 형식적 모병제, 실질적 징병제. 육군 5~12년. 해군 5~10년. 공군 3~4년. 40세까지 강제적으로 비상근 복무. 그 후 60세까지 노농적위군에 복무함.
라오스 최소 18개월
몽골 18~25세의 남성에 한해 1년
미얀마 24~36개월
대만 12개월. (19세에서 40세까지) 1993년 이전 출생자에 한해 12개월. 1994년 이후 출생자는 4개월 (대체복무 가능)
베트남 36개월. 육군과 방공병력은 2년, 공군과 해군은 3년. 특기병은 3년. 몇몇 소수민족들은 2년. 청년 인구가 많아서 현역판정자들 중 실제 징병율이 낮음.
알제리 18개월. 육군에서만 복무함. (6개월 기본 훈련. 12개월간은 일반 군대에서 종종 민간 업무에 관여하며 복무함)
이란 보고된 대로는 21개월.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복무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음
이스라엘 36개월. 장교 48개월. 다른 계급들은 36개월. 여성 24개월. 유대인과 드루즈교인들에 한함. 기독교도, 체르케스인, 이슬람교도들은 지원에 한해 입대
모리타니 24개월
모로코 18개월. 사병들은 주로 지원병들.
카타르 18~35세 사이의 인원들은 4개월. 대졸자는 3개월. 예비역은 10년간 또는 40세까지
시리아 30개월(병역 회피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음)
아랍에미리트 24개월. 18세부터 30세까지의 남성들은 2년간 복무. 중등교육 이수자들은 9개월. 여성 지원자들은 9개월.
볼리비아 12개월(18~22세)
브라질 12개월 (18세부터 입대 가능. 입영 대상자 과다로 많은 인원이 면제됨)
칠레 육군 12개월. 해군 21개월. 공군 18개월. 법적으로 병역은 2년간 지속 될 수 있음
쿠바 3년. 전문직을 위해 공부한다면 2년. 대부분 대학 입학 예정자들이 2년 복무 후 입학. 성소수자는 비전투요원 복무 또는 면제
파라과이 12개월
차드 징병제는 존재하나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음
에리트리아 18개월. 18세부터 40세에 한함(4개월간 군사훈련)
기니 24개월
마다가스카르 18개월(대민업무 포함)
모잠비크 24개월
수단 24개월. 18~30세 사이의 남성만
탄자니아 3개월. 3개월간 사회 복무와 혼합된 기초 군사훈련. 18~23세

 

결론

바야흐로 대 대체복무제의 시대가 열렸다. 대체복무제도가 현역 병사들과 형평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반대 주장은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보건대 일견 타당한 말로 들릴 수 있다. 한국의 징병제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기 때문이다물론 이제야 조금씩 기간병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 주중 외출이 가능해 지고 개인 전화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대 혁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제서야 시행 된다는게 우습고 슬프다. 또 한편으로는 이게 과연 일선 부대에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뿐만 아니라 군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한국 예비역들은 사소한 문제로 유치한 통제를 거는 고참이나 지휘관들을 수시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아직 한국식 징병제 하의 한국군은 갈 길이 멀다 할 수 있다.

나는 외국의 징병제 사례를 수집하던 중, 한국처럼 징병제가 운용되는 국가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스레 놀란 바 있다. 한국처럼 턱없이 적은 급여를 지급하고, 사실상 인신구속의 형태로 병력을 통제하며, 지나치게 복무기간이 길고 개개인의 권리가 거의 보장되지 않는 군대는 거의 없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의 군대들은 한국에 비해 지나치게 저개발 상태의 개발도상국들뿐이었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은 여지없이 양심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여, 개인의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병역을 다른 방식으로 갈음하는 방식을 마련해 두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적 해결책 말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는 신념을 인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지나치게 비대한 병력 숫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만 하다. 한국전쟁 이후 10만에서 60만으로 뻥튀기된 병력이 아직도 제대로 수정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장기적으로는 병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이 있으나, 과연 실행될지는 의문이다. 청년 인구는 줄어드는데, 여러가지 군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문제로 인하여 군 병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를 맞추기 위해 병력이 더 필요하다보니 징병 신체검사 기준을 수정하고 방위산업체를 줄이고 전문 연구요원까지 징병하는 등 합리성을 떠난 조치가 줄을 잇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국가 체제도 변해야 한다.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시킨 것은 결국 경제력과 대화였고 지금이 1차 세계대전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제도라는 것은 언제든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 유일하게 무력을 사용하도록 승인받은 강력한 집단이 어떠한 논의의 여지도 없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국제정치의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일 뿐이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한데, 군대가 오히려 제어를 할 수 없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한국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와, 한국의 징병제와 군 제도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