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평화학+교육학 연구자,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망치)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

2016년 한 단체에서 주최한 ‘제1회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였다.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International leader, Seung Man Rhee (세계적인 지도자, 이승만) / Greatness, you strived for (위대하도다, 당신의 분투로) / A democratic state was your legacy (민주 국가라는 유산을 남겼으니)’로 시작하며 일견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이승만 찬양시인 듯 보여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라는 숨은 문장이 드러났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하와이로 떠난 사실을 빗댄 풍자로 읽힐 수 있는 문장이었다. 비슷하게 첫 글자에 ‘한반도 분열 / 친일인사 고용 민족 반역자 / 한강 다리 폭파..’ 등의 문장이 숨어있었던 입상작 ‘우남찬가’와 함께 해당 작품은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상태에서 뒤늦게 입상취소가 되는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페이스북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페이스북

 

10일~14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의 부대행사로 13일 토요일에 문예제가 열린다고 한다. 전국 초‧중학생 및 해당 연령대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문예제의 주제는 ‘바다사랑 제주사랑’이다. 어떤 바다에 대한 사랑을 글에 담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도 다양한 해양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바다는 아닐 것이다. 구럼비를 부수고,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를 죽이고 쫓아내어 그 무덤 위에 지어진 해군기지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생명의 바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떤 제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 폭력에 저항하고 평화를 실현하고자 갈망하던 이들이 열심히 만들어오던 평화의 섬 제주는 아닐 것이다. 아직 치유되지 못한 4.3 국가폭력, 11년 째 이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국가폭력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강정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평화의 제주를 말할 수는 없다. 결국 국제관함식을 통해 전 세계에 홍보하고자 하는 바다와 제주는 과정이야 어쨌든 해군기지가 자랑스럽게 들어선 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태평양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제주다.

이번 국제관함식의 목표는 전 세계를 향해 제주가 국제적 군사기지로 거듭났음을 거하게 공표하는 데 있을 뿐이다. 11일 관함식에 참가해 해상사열을 받던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게 강한 국방력이며, 그중에서도 해군력은 개방·통상 국가의 국력을 상징한다”고 말한 점에서도 그 취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해군기지가 들어선 제주가 ‘평화의 거점’이 될 것이고, 국제관함식이 ‘세계의 평화·화합을 도모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평화가 군사안보로 지켜질 것이고 군대는 자국 영토와 국민을 지킨다는 군사주의적 신화를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군대의 본질은 ‘지키는 것’을 넘어서 ‘침략’에 있다. 국방을 책임진다는 한국군은 평화나 재건 따위의 이름으로, 하지만 사실은 ‘국익’과 정치적 이해관계 계산에 따라,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미군기지에 맞서 삶의 터전과 생명,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평택 대추리와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자신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어야 마땅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벌여왔는가. 평화는 결코 무기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사진출처: 제주의소리 (2018 해군 국제관함식 반대와 평화의 섬 제주 지키기 공동행동 제공)

사진출처: 제주의소리 (2018 해군 국제관함식 반대와 평화의 섬 제주 지키기 공동행동 제공)

 

제주는 거대한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땅이자,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가 여전히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은 그 노력과 생명들을 짓밟고 세워진 해군기지가 아니라 바로 그 국가폭력에 맞서는 평화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들을 견고한 차벽 뒤로 숨긴 채 학생‧어린이‧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호국문예제가 열린다. 해군본부의 요청으로 제주도 교육청에서는 각 급 학교에 교직원과 학생 참가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고 하니, 가히 동원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평화를 지킨다는 바로 그 군대에 의해 깨어지고 짓밟힌 강정에서, 여전히 그 불법과 폭력에 저항하며 생명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목을 무력으로 옥죈 채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떤 제주사랑과 어떤 바다사랑이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인가. 통렬하게 ‘니가가라 하와이’를 외치는 작품이 한 편쯤 나와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