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예비군 훈련 거부자,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전쟁없는세상 주:

이 글은 지난 10월 31일 국가인권위가 주최한 ‘헌법 및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형수 님이 발표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개고한 것입니다. 

 

현재 대체복무 도입 및 제도 설계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대체복무기간, 복무분야와 방식, 대체복무 신청 및 심사입니다. 이중 대체복무 기간과 복무 방식(출퇴근이냐, 합숙이냐)은 군입대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군복무와 대체복무의 형평성 비교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대체복무 설계 기준이 현역 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에만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가 법률이 보장해야할 병역 이행의 한 종류라면, 현역 군복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병역 내용과의 비교에 따라 형평성이 조정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재 군복무 이외에도 사회복무 등 다양한 복무제도가 있다는 점에서 여러 제도들 간의 형평성을 살피지 않고 현역 군복무만을 기준으로 형평성을 평가해야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누구의 상대적 박탈감인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2005년 국방부에서 징병대상자들(당시 현역복무자들 포함)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의 적절한 기간에 대해 물었을 때 현역복무보다 1.5배 이내가 적정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59.7%였습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합숙을 전제로 1.5배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40.2%였습니다. 어쩌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주체들은 군필자 즉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들의 박탈감은 사후적인 것으로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현역의 복무기간이 줄고, 군대 여건이 나아져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국방부)가 이미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근거로 복무 여건이나 복무기간을 조절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대체복무제가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야할 까닭은 무엇일까요?

2005년 한국국방연구원이 수행한 징볌검사대상자 조사 결과. 자료집 86쪽.

2005년 한국국방연구원이 수행한 징볌검사대상자 조사 결과. <헌법 및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86쪽.

 

2018년 국가인권위 연구용역팀의 입영대상자 설문조사 결과.

2018년 국가인권위 연구용역팀의 입영대상자 설문조사 결과.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 73쪽

 

많은 분들이 군복무와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대체복무제의 악용, 즉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병역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형평성의 내용을 구성하는 군복무기간과 복무 방식이 시사점을 줍니다. 사람들이 군복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한창 사회활동을 해나가야 할 나이인 20대에 최소 21개월을 군복무를 하는 것이 인생을 소모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합숙으로 인해 사회와 단절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무대상자들은 군복무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체복무 도입에서 쟁점이 되는 ‘복무기간’과 ‘복무 방식’은 입영대상자들이 군입대를 부담스러워하게 만드는 군대의 단점, 바로 딱 그 지점입니다. 실제로 많은 군복무자들이 사회적 단절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군복무의 단점을 최소화하거나 이를 상쇄할 만한 요인이 있는 군복무를 탐색합니다. 이 과정에서 군복무자들은 스스로 겪는 군복무의 단점을 느낄 때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아 보이는 보직이나 병역 종류에 대해 “꿀 빨았다”, “땡보”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이는 상대에 대한 전형적인 비난의 언어인데, 이 평가를 바탕으로 군복무자들은 서로의 군복무에 대해 가치판단을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군복무 사이에서조차 형평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군복무 내 형평성도 확보되지 않았고, 군복무 이외의 제도들과의 형평성에 대한 평가도 없이, 단지 병역거부자들이 수행할 대체복무제에만 현역군복무와의 형평성 잣대를 대는 것은 국방부, 넓게는 국가가 해야할 일은 방기한 채 다른 희생양을 등장시켜 군복무자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군복무자의 처우나 상황 개선, 혹은 군복무의 단점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대체복무제는 군복무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헌법이 요구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군사행위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현역복무자의 불만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군복무자들의 감정을 해소시키지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살리지도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상대적 박탈감 해소라는 관점에서 형평성을 다루기 시작하면 대체복무제는 결과가 무엇이든지 징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군대의 단점보다 더 나쁜 기준을 대체복무제에 적용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대체복무제는 군복무의 단점보다 더 안 좋은 단점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군대 안 가는 얘들이니 군대보다 더 힘들고 고생해야해”라는 발상과 의도 자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뻔하지 않을까요?

 

단점을 기준으로 형평성을 논의한다면 제도 설계 자체가 경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형평성 때문에 대체복무제의 복무기간은 현역복무보다 길고, 복무 방식은 합숙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현역보다 복무기간이 길면 징벌적이다는 대응 논리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실증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복무기간을 이야기하지만 국제적 비교와 유엔에 권고를 비춰보면 대체복무기간이 현역보다 1.5배 이상 길면 논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합숙을 전제한다면 합숙이 가능한 복무 영역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적, 사회적 필요가 있더라도 아직 합숙할 수 있는 여력이 확보되지 않는 잠재적 복무 가능 영역(가령 사회복지시설 등)이 있을 텐데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게 됩니다.

 

형평성을 따지려한다면 군복무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장점을 기준 삼아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복무를 어떻게 개선하고 바꾸는 것이 대체복무보다 더 좋게 개선하는 쪽인가를 논의하는 쪽으로 초첨을 맞춘다면 여러 병역 종류에 복무하는 당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들의 복무가 우리 사회에 끼칠 효용성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병역기피자를 막고 군복무로 유인하는 정책을 설계한다면 군대가 대체복무제보다 훨씬 장점과 혜택이 많도록, 다른 말로하면 대체복무제가 군대보다 혜택과 장점이 덜 하도록 설계해야 대체복무자들에게 징벌이 아닌 복무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형평성도 중요하게 다뤄야겠지만, 제도 설계할 때 대체복무제가 사회적으로 어떤 효용성을 가지고 어떤 기여를 할지를 기준 삼아 이야기한다면 논의가 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숙련되려면 일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취지에 근거하면, 대체복무제는 군사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양심과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복지와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대체복무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군복무 기간이 2배로 정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근거가 군복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해소 때문이 아니라 대체복무가 숙련된 양질의 서비스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간 확보 때문이라면, 대체복무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합숙이 아니라 출퇴근이라면 대체복무자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군복무 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 합숙복무를 정해둔 채 대체복무제를 논의하게 되면 이것 자체가 대체복부를 사회적으로 활용하는데 장벽이 되어서 의미 있는 제도 설계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것을 공급하려면 얼마큼의 기간이 필요하고, 어떤 복무 형태가 행정 소요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논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더 의미 있는 방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