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희

 

 

나, 최성희는 50 대 여성 이며 제주 도민이다. 제주 강정 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와 제주의 군사화를 반대하며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나는 오늘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인 ‘병역’을 거부하는 선언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한 체계의 발견이다.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안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찔러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하고 그 힘은 군사력이다.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지니고 있고 여성들은 그 남성들을 ‘보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남성, 여성 모두가 체재의 유지와 재생산에 ‘복무’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안보이데올로기를 주입받는다. 남성들이 군대에 가는 것이 당연시되고 학교에서 받는 군대식 교육은 지금도 후세대로 ‘계승’ 된다. 군대를 가지 않거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남성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처벌’을 받아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공모’의 관계에 놓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공모’에 있음을 깨닫기까지, 자신이 사회 통제 체제의 분열과 집산의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깨닫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이 체계는 강력하고 총체적이다. ‘체질화’된 지배자들의 언어를 떨치고 일어나는 것은 또한 위험하기도 하다. 이 모두에도 불구하고 체제 내에서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50대 중반이 되도록 병역거부 이슈는 ‘나의 이슈’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보면 이 체계는 여성이 병역거부 이슈를 자신의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성공한 편이다. 내가 여성으로서 병역거부 선언을 하게 된 것. 그것은 질문을 하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체제 유지와 재생산을 돕는 나의 ‘공모’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들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왜 병역거부인가? 왜 선언인가? 그것은 병역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유지와 재생산 체계에서 핵심적 기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병역거부 이슈는 본질적으로 여성들의 이슈이며 여성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사안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선언이란 공적인 형식은 공유를 전제로 한다. 선언의 배경과 목적이 한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환기시키고 호소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나의 선언은 이 사회를 향한 질문이다.

질문을 하게 만든 여러 계기들이 있다. 무엇보다 동료 남성들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목도하며 이것이 과연 여성들이 외면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그칠 일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연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또한 전쟁없는세상 등 적극적으로 병역거부 활동을 지지하고 타국과 국내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을 소개한 여성 평화활동가들의 활동도 고무적이었다. 작년에 터키,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선언문을 접했다. 이러한 선례와 기록들은 병역거부 이슈가 여성들의 이슈가 되는 것의 필요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례와 기록들을 공유하며 ‘같이,’ ‘함께’ 해야 할 필요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도움을 준 남성동료들의 헌신이 있다.

그리고 나는 세 가지의 역사적 계기를 꼽고 싶다.

첫 번째는 1947-1954년 제주 4·3 당시 학살과 1980년 광주 학살을 포함 해방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에서 자국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그들을 학살한 집단이 한국군 이라는 사실이다. 국가와 군대가 국민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이보다 자명하게 무너져 내린 때가 또 있었던가.

두 번째는 1960년대~1970년대 베트남에 대한 전쟁 시 베트남 민중들에 대한 한국군의 학살이다. 이것이 한국인에 의해 처음 폭로된 것은 2000년대 초다. ‘민족’ 개념의 한계는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세 번째는 2018년 10월 강정에서 강행된 이른바 ‘국제 관함식’(제국주의의 산물로서 군사주의의 과시)이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은 미 핵항모 로널드 레이건 포함, 40여척의 국내외 군함의 사열을 받으며 평화는 군사력에서 나옴을 역설했다. 그리고 강정은 순식간에 그러한 국가와 국가원수의 지론을 강행하기 위한 작전으로 포위되었고 주민들과 시민들은 ‘평화는 군사력’이라는 프레임의 포위에서 탄압받는 자신들을 발견하였다. 군대는 관함식 기간 동안 많은 어린이들이 군사 체험을 하도록 프로그램들을 또한 기획하였다. 군사주의 문화는 한 인간이 어릴 때부터 군사주의 내면화 교육을 시킨다. 이는 제국주의의 충실한 부속품이 되는 과정이다.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이 계기들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군대, 군대 문화, 군사주의, 그리고 성별을 막론한 개개인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든 군대가 나쁜 것은 아니야, 착한 군인도 있고 나쁜 군인도 있어’ 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착한 군인, 나쁜 군인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개개인들이 복무하도록 강요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유지, 재생산되는가이다.

내가 사는 강정마을은 12년 째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국가 시책’의 이름으로 들어왔다. 해군과 국가는 ‘안보’의 이름으로 주민의 주체적 결정권을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함으로써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학살과 부당한 재산권 탈취와 가혹한 사법적 탄압을 동반한 것이다. 국가는 또 한 번 공군기지로 쓰일 우려를 안고 있는 제주 제 2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도민들의 생존권과 주체적 결정권은 다시 한 번 묵살되고 제 2 공항 연계 도로인 비자림로에서는 다시 한 번 동식물들이 학살되거나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다. 국가와 군대는 과연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국가와 군대는 과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인가. 침략적으로 지어진 기지는 안보를 위한 것인가. 또 다른 침략을 위한 것인가. 일제시대 병참기지로 쓰여 중국 침공에 가담하게 된 제주의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의 한 결론은 그 제국주의 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부속품이 그 거대한 설비에서 튕겨 튀어나오지 않는 한 그 설비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병역거부 선언은 바로 그 튕겨 나온 부속품으로서의 선언이다. 나는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체계의 유지, 재생산을 공고히 하는 병역 체계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그러한 ‘당사자’로서 거부한다.

나는 선언한다.

 

  • 나는 모든 생명들이 동등하게 주체로서 존중되는 사회를 꿈꾼다. 군사주의는 가부장제의 최악의 형태이며 차별에 바탕을 둔 분열과 지배를 통해서 작동한다. 군사주의는 제국주의를 존속하게 하는 중추적 장치이다. 또한 군대 내 성차별, 성폭력은 군사주의의 한 양상으로서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군사주의와 그 군사주의를 유지하게 하는 병역을 거부한다. 군사주의의 양상들인 모든 전쟁과 전쟁 훈련과 전쟁 쇼를 거부한다. 군사주의와 병역은 생명에 대한 폭력,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 이다.
  • 나는 모든 어린이들이 제국주의를 내면화하는 군사주의 체험과 교육 대신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가지길 바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약속과 제도가 시민의 힘으로 구축되길 촉구한다. 참조로 유엔아동권리 협약 38조 2항은 “당사국은 15세에 달하지 아니한 자가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할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행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 협약에는 모든 당사국이 이 협약을 성인과 아동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것을 권고하는 조항이 있다.
  •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을 포함, 시민들의 병역 거부 선언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나는 여성들의, 그리고 병역의 의무를 직접적으로 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한 당사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시민들의 그러한 흐름이 궁극적으로 평화를 가져 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다. 현재 동북아와 중동에서 군사주의로 인한 긴장이 격화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많은 어린이들이, 많은 생명들이 학살되고 있다. 우리의 선언은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작은 파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