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멸치입니다. 그리고 엄문희입니다.
강정마을로 내 삶을 옮기고자 마음먹고 내가 나에게 준 이름이 ‘멸치’입니다. 2015년 겨울부터 아이들과 강정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먹던 음식을 삼키지 못한 채 1년 뒤 강정에 왔습니다. 4.16 때문에 강정을 살게 됐습니다. 더는 내가 사는 세계의 문제를 모르는 것처럼 피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그때 그곳에 있었습니다. 8살 아이였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에 던졌던 질문을 기억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돼서야 그때 내가 본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한 번도 1980년 5월과 떨어져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강정마을 주민으로 4.3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4.3들’을 만났습니다. 개인으로서 만나기 힘든 국가를 매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질문한다는 이유로 비국민으로 내몰리고, 주민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 시간을 겪으며 나에게 남은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의 당사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세계시민의 책무성을 알았습니다.
지금 내가 병역의 당사자로서 동원을 거부하는 동기엔 무엇보다 이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는 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위기에 대한 각성이지만 그 전쟁이란 것이 무시로 내 일상에 파고드는 모든 일이 된다면 우리는 ‘병역’이란 말을 다시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확인하고 경계할 것 가운데는 우리가 일상의 보편 언어로 획득하고 싶은 ‘평화’와 그 실천의 이름으로서 ’병역거부‘가 과연 새로운 언어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이름들을 낯설어하는 이유에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검열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도달하려는 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권력이 내놓지 않는 언어, 권력이 허가하지 않는 언어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나는 여성입니다. 나는 제주 사람입니다. 나는 강정 주민입니다. 나는 내가 겪는 모든 일의 당사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나의 정체성은 주류 권력으로부터 간단히 거부당했습니다. 단, 여성인 것만 빼놓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 묻기로 했습니다.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여성으로서 병역을 거부한다는 일은 이 사회에 던지는 선언이면서 동시에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병역을 거부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습니다. 내가 여성인 이유로 병역의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그 문제를 논의할 아니 최소한 사고할 권리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여성은 전쟁을 말할 권리도, 그 전쟁에 동원되지 않겠다는 말도 할 자격이 없는,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가 맞습니까? 여성이 병역에 관해 당사자에서 분리되고,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전쟁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성이 병역의 당사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내가 여성으로서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여성을 아예 논의의 당사자에서 배제하는 것, 여성을 약자로 상정하는 것, 희생자화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군사주의적 발상입니다. 여성이 전쟁 당사자, 병역 당사자가 아니라는 인식은 전쟁과 폭력의 본질을 은폐합니다. 이것이 가부장 권력과 주류 전쟁 권력이 그간 여성을 착취하고 동원한 방식입니다. 혐오를 재생산하고 여성을 논의 주체에서 제외하기 위해 권력이 요구하는 성 역할과 지위만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으로서 내가 병역을 거부하는 일은, 어떻게든 대상화시키려는 기존 권력에 저항해 주체가 되려는 행위입니다.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으로, 제주 해군기지 준공 이후를 살아가는 강정 주민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에 ‘질문’하는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대체 어떤 과거를 가졌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밝혀내고 그것이 더는 연장되지 않게 지금 여기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그 미래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과거란, 일상의 장치와 구조에 숨어 있는 ‘폭력’이었습니다. 폭력인 줄도 모르고 협력해온 나 자신이었습니다. 일상에 파고든 전쟁이었습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거대한 국가와 마주하는 삶, 강정의 삶은 질문하는 삶이었습니다. 강정에서 만난 국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싶었고, 만나서 묻고 듣길 원했으나 국가와 군대는 우리의 질문을 받지 않았습니다. 질문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력, 질문을 무시하는 힘, 질문하는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존재, 그것이 폭력이었습니다. 구럼비 박탈은 단일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강정에서 작년 가을에 열렸던 국제관함식 역시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혐오의 정치’와 ‘희생의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마을을 깨뜨리고 들어온 핵 함선보다 두려운 것은 ‘안보’라는 간판만 쓰면 어떤 일도 묵인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수 특권층이 안보 이슈를 독점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한 그 어떤 논의에도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논의의 주체도 못되면서 폭력에 가담했습니다. 폭력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재에서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타클로 소비해버린 일이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나 역시 폭력의 가해자였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나의 권리가 누군가의 착취를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당위를 극대화한 일상의 위협은 이미 상시화되었고, 인간의 일상 감각과 인식 틀을 바꿔놓았습니다. 전장에 나타난 국가 간 전투력의 대결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유형무형의 자원 전체가 이미 전쟁의 이해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나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그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폭력인 줄도 모르고 협력했습니다.
폭력에 동원됐습니다. 효율을 위해 단번에 배제되는 존재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 존엄도 의심받는 성소수자로, 최소한의 안전도 담보되지 않은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신자유주의의 온갖 실험에 희생되는 세대로, 국가권력에 굴복할 선량한 시민화 교육의 장에서 그 학생으로 우리는 이미 동원되고 있습니다. 혐오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역이 총을 들고 군사훈련에 동원되고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해야 합니다. 폭력의 구조, 폭력의 정당성을 위해 동원되는 일상의 시스템이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병역거부는 군대 징집에 반대하는 남성들만의 싸움으로 둘 수 없습니다. 군대 밖 일상을 지배하는 군사주의에 맞선 우리 모두의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제주 구좌읍 송당리 비자림로 숲을 가면 학살 중인 숲을 만납니다. 그 숲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붉은 선’이 어떤 세계를 동강 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들은 어떤 날 동시에 이곳에 줄 맞춰 심어졌다가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한날한시에 죽게 됐습니다. 나무들에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은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일을 학살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에는 석탄이 묻어있지 않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다 죽은 비정규직 젊은 노동자의 피도 묻어있지 않습니다. 주민이라는 이름이 국가가 국책사업 때만 주는 자격의 이름이란 것도 몰랐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은폐는 모든 존재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학살 아니면 어떤 이름을 쓸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제주 여성으로서 이 섬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학살을 거부합니다.
지금도 제주도청 앞 천막촌에선 시민들이 공공의 폭력에 질문하고 있습니다. 비자림로 숲에 나무들을 껴안고 함께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정은 4.3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광경 너머의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병역거부는 당연하게 강요되어 오던 모든 전쟁의 동원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 사회 곳곳에서 각기 다른 얼굴로 위협하는 권력과 폭력에 문제 제기할 것입니다. 논의의 당사자성 마저 지워버린 권력에 저항할 것입니다. 나에게 ‘병역거부’는 1980년 5월을 살았던 8살 아이의 질문을 마주하는 일이고, 제주라는 정치문화의 지형에서 드디어 깨닫게 된 인류로서의 실천입니다.
- 나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만에 희생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 여성이 병역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가 내가 여성으로서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 나는 폭력에 가담했고 동원됐던 사람으로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 병역을 거부합니다.
- 나에게 병역거부는 평화롭게 살 권리이자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입니다.
- 나는 모든 폭력에 단호히 맞설 것입니다.
- 전쟁에서 많은 희생을 내서라도 승리하는 것이 평화라는 생각과 계속 만날 것입니다. 그것을 주창하는 권력의 착각과 기만을 말하겠습니다.
- 이 모든 결정은 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겠습니다. 당연히 병역을 거부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나를 병역거부 선언으로 내몬 글 하나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 2017년 6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중에서
– 2019년 5월 14일 강정에서 온 멸치, 엄문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