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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민

2009.11.10 입영일에 현민의 병역거부선언 갈라쇼 <영장찢고 하이킥> 성황리에 개최
2009.12.11 경찰조사(용산경찰서)
2010.01.20 심리공판(오전 10시반, 서울서부지방법원 406호)
2010.03.03 선고공판(오전 10시), 징역 1년 6월 선고. 법정구속 안됨.
2010.03.12 서부지검에 출두하여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2011.06.30. 가석방 출소

>> 병역거부 소견서

* 이 글은 2009년 11월 10일에 발표한 글의 요약본입니다. 원래 소견서는 A4 10페이지 분량인데, 웹상에 올리기도 소식지에 싣기도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라서 어설픈 요약본을 만듭니다. 소식지 전문은 2010년 초 그린비출판사에서 출간예정인 책에 다른 이들의 글과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현민)

현민의 병역거부 소견서

1. 잔뜩 묵은 고민을 끄집어내며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된 시기가 언제부터였는지 그 시작점을 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말랑말랑한 대학 초년생 시절, 남성성의 결핍을 고민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병역거부운동에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있다.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나눠주는 자료집을 읽고 눈물을 울컥 쏟았던 기억이 막연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20대 내내 고민해왔던 군대문제와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과정을 나누고 싶다. … 나는 오늘을 계기로 이들 모두가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서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사적인 개인에 불과했던 한 사람이 괴로워하던 끝에, 그 괴로움이 어떤 권력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인식했으며, 그 권력과의 접촉면이 최대치에 이르러 병역거부를 선언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고생이라고는 기껏해야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는 정도였던, 그저 그런 젊은이가 권력을 인식하고 대면하면서 겪었던 혼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2. 첫 번째 단계 :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고 권력이라고 명명하기

먼저 병역거부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의논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다. 고백하자면, 나는 대학 남자동기들이 하나둘씩 군대에 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군대 때문에 우울했고 힘들었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깬 적도 적지 않다. 옆에서 자던 친구가 나의 잠꼬대에 놀라서 깨운 적도 있다. 남들은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그런 꿈을 꾼다고 하던데,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
주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군대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군대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일종의 금기다. 따로 정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그런 암묵적 룰이 있어왔다. 군대문제는 연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군대 이후의 삶을 계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단 한 번도 미래에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그려보지 못했다. …
조심스럽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내 일상을 구성하는 주변 사람들, (군대문제를 포함한) 나의 미래와 인생계획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성심과 선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일상적인 대화와 충고 속에서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내 고민을 나누고 설명할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만 남몰래 키워갔다. … 내겐 가장 절절한 현실이 평범한 일상 속에는 전혀 들어설 수 여지가 없는 비현실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때마다 관계에 대한 체념은 커져만 갔다. 난 좋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들을 마음 속으로 참 많이도 저질렀다.

그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고통과 슬픔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통’이니 ‘슬픔’이니 ‘권력’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어색하고 낯설다. 나는 군대문제와 관련하여 정말로 권력관계에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나는 학습을 통해 ‘국가폭력’이니 ‘국민만들기’니 하는 용어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곤란의 원인은 권력 때문이기보다는, 왠지 관계 맺기가 서툴고 미래가 불확실하게 요동치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20대를 보내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자꾸 묻게 된다.

3. 두 번째 단계 : 선택 바깥의 선택이 지니는 무게를 가늠하기

아무리 머릿속에서 갖가지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서 계산을 해봐도 결과는 항상 마이너스다. 손해가 막심하다. 병역거부를 통해서 활력이 증가되고 기쁨이 발생하고 그런 일은 없다. 그로 인해 겪을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마치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온갖 잡스런 상상을 해보곤 했다. …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서 거꾸로 나는 시시하다고 생각해왔던 내 일상이 얼마나 적잖은 자원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많았다. 뒤집어 보면, 난 단 한 번도 권력관계에 있어서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란 걱정은 다 하고 있는 꼴이었다.

또한 내게 있어서 병역거부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선택 바깥의 선택이란 점에서 가장 자유로운 선택이고 가장 주체적인 선택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내가 실제로 그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이와 같은 감정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과 이동에 대한 예감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다. ‘탈주’니 ‘횡단’이니 하는 용어를 애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자신이 한 번도 그런 위치이동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달았다. 이 두려움은 현재의 위치와 병역 거부 사이에 놓인 심연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두려움이다. …
겁을 권력과 결부시켜서 사고한다는 것. 이것은 겁을 극복하거나 제거해야할 부정적 감정, 일시적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와 같은 고민을 권력의 문제로 제기하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을 섣불리 지우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고 끝까지 사유할 것이 요청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간직한 채로 그 감정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동학을 끝까지 감당하면서 관찰하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나 보다. 어떤 우울증은 의학적 치유의 대상일 수 있지만, 어떤 우울증은 묵혀두면 정치학의 자원이 되기도 한다. 아니, 내가 선택한 우울증의 치유제는 정치학이다.

4. 세 번째 단계 : 운동 주체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검열하기

내겐 병역거부를 한다고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좋은 키워드는 없는 것 같다. 천주교식 세례명이 있지만, 사실상 냉담자다. 단체에 속해 있지도 않다. 좋아하는 사상가가 있지만, 그래도 무슨주의자라고 이름을 가져다 쓰기엔 영 어색하다. 20대 내내 페미니즘은 내 고민을 지속시켜주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엔 성별이 남성인데다가, 페미니스트와 연애를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는 치명적인 과거가 있다. 평화를 사랑하기보다 그냥 싸움을 못하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내겐 팔레스타인 주민의 아픔을 헤아릴 능력이 없다. 후원모임카페에다 한 대학동기녀석은 ‘평화의 꽃’이 되라고 적어놓았던데, 나는 ‘꽃’보다는 ‘꽃미남’이 되고 싶은 바람과 욕망이 훨씬 크다. 이러다 보면 정말 그릇도 안 되는 놈이 분단국가에 태어나서 주제넘게 욕을 보는구나 싶었다. …
나는 병역거부를 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주체로 자신을 포장하고픈 유혹에 저항하고 싶다. 내겐 진정성과 속물성, 소심함과 뻔뻔함, 귀여움(?)과 섹시함(?)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병역거부운동의 주체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계에서 피어나는 요상한 방식의 주체 아닌 주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완결된 자기서사나 고도의 성찰성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좀처럼 정치화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연, 가장 내밀한 일상을 구성하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정치적 영역이 무엇인지를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
찌질함에 기반하면서도 궁상맞음을 경계하는 병역거부운동을 하고 싶다. 내 몸에 얽혀있는 감정을 제거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 또한 정치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운동을 하고 싶다.

5. 비약이 아닌 몰락의 정치학을 선택하며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나는, 대개의 대학생과 지식인이 그러하듯이, 소위 민중 내지 사회적 약자의 삶과 자신의 삶을 쉽게 동일시하거나 투사하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히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권력과 힘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진정성과 공감의 순간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병역거부는 내게 위와 같은 행위와는 별개로 실제 그러한 삶으로 진입하는 일이 어떤 체험인지를 생생히 알게끔 했다. …
아마도 병역거부는 지금껏 내가 지닌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와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그 밖의 자원을 상당 부분 박탈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생긴 상처와 흔적은,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그런 것처럼, 오랜 세월을 감당해야 하고 쉽게 지우거나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역거부라는 몰락의 순간, 삶의 궤도는 기우뚱 하면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는 천체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그런 몰락을 기꺼이 선택함으로써, 내 생애 최대의 권력과의 접촉면을 선명히 드러내고 이를 통해 개별적인 삶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이 있다. 그리고 나의 삶 또한 다른 어떤 이들의 삶과 포갤 수밖에 없는 그런 위치에 이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것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될 수 없겠지만, 그때의 삶은 적어도 하나의 운명일 수 있다.

>> 현민 매체 인터뷰, 기고글

[캠퍼스라이프]선택 밖의 선택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현민 씨를 만나다.

안효성 수습기자

http://www.snujn.com/site/art_view.html?id=1863

영장 찢고 하이킥병역거부 갈라쇼 현장을 가다

2009년 11월 17일

http://greenbee.co.kr/blog/826

병역 거부에 꼭 거창한 신념이 필요한가.”

“인권을 말하다” 릴레이 인터뷰 6 양심적 병역 거부자 현민씨.

2011년 9월 29일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2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