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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성

2004.12.13 병역거부 선언
2005. 1. 26, 27일 성북경찰서 지능수사6팀에서 경찰조사
2005. 1. 28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 , 구속
2005. 3 . 02 서울지법에서 1심 심리공판
2005. 3. 18 서울지법에서 1심 선고공판, 1년 6개월형 선고
항소 이유서 제출
2005. 4. 28 서울지법에서 2심 심리공판, 심리 연기
공판 연기 요청서 제출
2005. 5. 19 서울지법에서 2심 심리공판 진행
활동 증명서 제출
2005. 5. 31 서울지법 2심 선고공판, 항소 기각판결
2005. 7. 28  대법원 상고기각
2005. 9.  9   충주구치소로 이감
2006. 5.  4   가석방으로 출소

>> 병역거부 소견서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글은 2004년 12월 13일, 입대 날짜에 군대에 가기를 거부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제가 왜 병역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글입니다. 26살의 젊은이인 임재성의 짧은 생애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던 병역거부에 대한 저의 생각과 신념이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많은 부분 오해와 왜곡의 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서로의 “다름”에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연다면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하기까지

제가 전쟁을 위한 그 어떤 행위에도 복무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저의 대학교 때 경험과 확신으로 인해서입니다. 대학에 들어온 저는 스스로가 이 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고 살아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의 다양한 면을 알고 싶었고, 참여해보고 싶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 함께하면서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주노동자들과 장애인들의 이동권 쟁취를 위한 싸움 등에 연대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법대생이었기에 1학년, 2학년 때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은 점점 고시를 본다며 떠나갔지만 스스로 이 야만과 폭력의 사회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그 모순을 바꾸며 사는 삶이 인간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고 확신했기에 더욱더 열심히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02년부터는 보다 운동의 시야를 넓혀서 평화주의 운동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실천을 만들어갔습니다. 당시는 2001년 911테러 이후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한참이었고, 한국은 F-15도입에 대한 논쟁이 활발할 때였습니다. 저는 F-15도입을 반대하면서 그 반대의 이유가 “미국” 것이기에, “돈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기에”가 아니라 “무기로 평화를 살 수 없다”라는 논리로 그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즉, 보다 많이 무장하는 것은 평화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전쟁을 불러오는 길이며 진정한 이 사회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줄이고 그 돈을 가난한 이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이 총을 들고 다니는 사회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무기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결코 평화를 줄 수 없다는 상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전 이 사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보다 강한 군대와 무기가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무기와 군대로 평화를 지킬 수 없으며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와 무기를 줄이고 없애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F-15도입반대 운동과 함께 당시 오태양씨의 한국 최초의 공개적인 병역거부 선언 이후에 뜨거운 이슈가 되어있었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역시 당시 제가 했던 평화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적극 지지할만한 운동이었고,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실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오태양씨를 비롯한 당시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하고 있었던 여러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또한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는 이 운동이 군사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서서 스스로가 타인의 생명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려는 역사의 정당한 발전이며, 인류역사에서 단 하루도 쉼 없이 계속되었던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아주 느리지만, 제일 근본적인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비록 감옥을 가게 될 지라도, 그리고 평생 전과자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 정당한 역사의 흐름에 함께하고 싶었기에 이후 입영영장이 나온다면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2002년 병역거부를 예비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라크 파병반대운동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모임 전쟁없는세상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평화와 병역거부에 대한 저의 신념을 보다 키워갔습니다.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전쟁과 폭력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전쟁이 제가 살아있는 지금 시기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좌절했습니다. 어떻게 아무 명분도 이유도 없이 생명을 저렇게 죽일 수 있을까. 살인이 큰 범죄라면 이 세상에 수천, 수만 명을 죽이는 전쟁보다 더한 범죄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수많은 목숨을 죽인 사람들은 아무런 죗값도 치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이것을 보고 침묵하면서 무슨 정의와 무슨 도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라크에 가서 맨몸으로 폭격을 막으려고 인간방패에 지원하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한국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반전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3,4월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2003년 4월 2일, 국회 앞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되는 날, 전범국가의 국민이 된 날이기에 정말 너무 수치스러워서 어떻게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국회 앞을 막았던 전경차 앞에서 제가 울던 그 때에도 이라크에서는 폭탄이 떨어졌겠지요.

그러면서 “전쟁반대”로 설명할 수 없는, 전쟁이 만드는 고통에 나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더욱 크게 가지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자본의 의한, 패권에 의한 전쟁이라서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살육과 학살을 만드는 그 어떤 전쟁과 폭력도 거부해야 한다는 확신.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는 확신. 총을 내려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

김선일씨를 죽였던 이라크 인들도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 겁니다. 병역거부자들에게 군대는 자국의 방어를 위해서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김선일씨를 죽였던 이라크 인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자신의 나라를 침략한 미국을 도와 파병한 “침략국 한국”에 대해서 맞서 싸우기 위해 김선일씨를 죽였던 이라크인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니까요. 그럼 파병한 한국 정부가 잘못한 것이고 김선일씨를 죽였던 이라크 인들은 죄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라면 그 이라크 인들을 처벌하기 위해 더욱 많은 군인들을 보내야 하나요? 지하철 곳곳에 붙어있는 테러대비방법 안내 포스터. 한국의 높아진 테러등급. 만약 한국에서 테러가 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요? 테러리스트? 아니면 파병을 결정한 정부?

이제 폭력과 전쟁, 분노의 사슬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 사슬에 이미 충분히 많은 생명이 죽고 고통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전 그 사슬을 끊기 위해서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의 작은 행동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한국에서는 그 시작이 더욱 소중합니다. 파병 3위의 전범국가이기에, 50년이 넘는 분단상태에서 수십만의 군인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아픔은 빨리 끝나야 합니다.

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 저의 젊은 날 중 많은 시간을 병역거부 운동과 함께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의 결실로 대체복무제가 도입이 되어,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통해서 사회에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제가 병역거부를 한 시점은 서울 남부지원에서의 병역거부 무죄판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유죄와 합헌 판결, 그리고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던 시기였기에 그러한 기대는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저의 노력도 부족했고, 이 사회의 뿌리 깊은 군사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병역법 개정안은 2004년 하반기 국회에서 좋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광복 이후 1만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800여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체복무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계속 감옥으로 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들은 병역기피자가 아닌 거부자로서, 현행 병역보다 훨씬 길고 어려운 일인 대체복무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병역거부자들은 그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기꺼이 응당한 처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비극을 이 사회가 외면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총으로 살인을 연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야합니까. 왜 UN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단체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외국의 사례에서도 전혀 부작용이 없는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제 개선에 대해서 깊은 고민도 없이 “한국의 특수성”만을 이야기할 것입니까. 이 아픔은 빨리 끝나야 합니다.

아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전 이제 제가 아는 것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막상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 몰랐지만, 그래도 견디고 이겨내 보려고 합니다.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그 길이 낯설고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합니다. 아직도 저를 말리셨던 부모님의 눈물이 생각나고, 제가 없을 동안 부모님이 견디실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저의 자아를 모두 파괴하는 일이기에 평생이 지나도 못 지울 상처를 드리는 자식을 용서해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비록 부모님의 고통을 밟고 가는 길이지만 이 길이 폭력과 전쟁에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병역을 거부하겠습니다.

 

>> 임재성 매체 인터뷰, 기고글

 

 

평화의 언어로 병역거부를 말하다 – 임재성

2011년 5월 15일

두리번 기자

http://www.personweb.com/articles/268?page=1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저자 임재성

http://greenbee.co.kr/book/book_view.php?article_id=218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저자 인터뷰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본 최초의 병역거부 이야기

2011년 2월 11일

http://www.greenbee.co.kr/blog/1310

 

천 명이 안보 위협?… 한국 군대 그렇게 엉망인가

[주장] 유엔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권고 거부, 참담하다

2012년 6월 19일

임재성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45875

 

병역거부자 군복무 제대로 보상받아야

2009년 3월 8일

http://blog.ohmynews.com/specialin/tag/%EC%9E%84%EC%9E%AC%EC%84%B1

 

국방의 의무 내세워 공짜노동력 착취 군가산점으로는 안돼제대로 보상하라

[주장] ‘누더기 제도’가 우대방안? 이젠 실질적인 보상 논의해야

2009년 10월 10일

임재성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33808

 

 

양심적 병역거부자 감옥행, ‘국격에 맞지 않습니다

UN 자유권위원회, 한국 병역거부자 11명의 권리 인정이 갖는 의미

2010년 5월 8일

임재성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8528

 

 

군대없는 나라 일본을 만들려는 사람들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1. 회의에 참가하며

2008년 5월 2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01140442&Section=05

 

 

살리자 헌법빛나라 9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2. 평화헌법과 두려움의 기억

2008년 5월 5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05110011&section_code=

 

 

육군은 개미공군은 새해군은 물고기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3. 박수만 받는 평화 넘어서자

2008년 5월 7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07140914&section_code=

 

 

군대폐지 국민투표가 가능합니까?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4. 스위스 평화운동가에게 듣는다

2008년 5월 8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08154345&Section=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5. 일본 법률가에게 듣는 평화헌법

2008년 5월 14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13185625&Section=05

 

 

평화에는 애국자가 필요없다

[헌법9조 세계대회 리포트] 6. 호헌운동의 극복을 위해

2008년 5월 15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14182524&Section=05

 

 

군대가서 총 들지 않을 자유당신은 알아줬다

[‘바보 노무현’이 남긴 것 3] 소수자에 대한 소신 고집, ‘대체복무제’

2009년 5월 31일

임재성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2770

 

 

“’던지는 돌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진 않는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1] 안드레아스 스펙

2009년 5월 11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1073623&section=03

 

 

유엔 사무총장 배출한 나라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시모 헬스텐

2009년 5월 12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2161053&section=03

 

 

여자도 군대 가야 양성 평등’?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3] 알렉스 파루신

2009년 5월 13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3152430&section=03

 

 

강경대 살해 보고 진압복 벗은 지 18아직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박석진

2009년 5월 14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4105138&section=03

 

 

전쟁이 똑바로 가르쳐주는 것군대는 살인 집단’”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보로 키타노스키

2009년 5월 17일

임재성 기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7090823&section=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