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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창근

 2003.11.13 : 느티나무까페 축하의 식탁,  병역거부 선언
2004.01.29 : 구속영장실질심사, 구속확정
2004.03.04 : 보석 허가, 현재 1심 재판 연기 중
2004.09.22 : 재판 속개. 국회 입법 논의 이후(12월) 로 연기
2004.12.01 : 서울 부지원에서 실형 1년 6개월 구형. 성동구치소에 수감
2005.01.20 : 북부지원에서 2심 심리
2005.02.03 : 서울북부지원 102호 법정에서 항소심 기각
2005.02.04 : 상고장 제출
2005.02.14 : 서울구치소에 이감
2005.04.15 : 2시 대법원 제1호 법정, 상고 기각 최종 선고
2005.06.08 : 충주구치소 이감
2006.01.27 : 가석방으로 출소

 >> 병역거부 소견서

‘저의 가슴 속 작은 소망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올해로 27살이 되는 젊은이입니다. 오늘 저는 훈련소로 가지 않고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러한 선택이 진실로 저의 소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행복한 마음입니다.

저는 병역거부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군에 입대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병역의 의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많은 고민과 고통을 인내하였을 것입니다. 서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지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미래로 시선을 돌린다면,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평화가 들어오기까지

저는 산으로 둘러싸인 거창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또래의 아이들과 똑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허약하지는 않았어도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놀이를 하면서도 얻어터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또 장난이 심해 친구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고 담벽을 타면서 놀기도 하였습니다. 장난꾸러기였기에 하루라도 야단맞지 않은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꾸짖어주시면서도 따뜻하게 보살펴주신 할머니와 부모님 덕분에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장난은 줄어들었지만,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학교 공부보다는 도서관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중학 2학년 때, 국어선생님의 권유로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고, 우연히 입상하게 되면서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금 다른 삶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이 우리는 베풀어주는 혜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인생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씩 작가의 꿈을 키워갔나 봅니다. 시평을 하고 소설도 쓰면서 창작의 즐거움에 빠져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난 아버지의 작고는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년을 넘게 투병을 하셨지만 간경화라는 병을 이겨내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동안은 매일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시고 밤 늦게서야 돌아오시는 아버지와 거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1년 동안의 투병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늘 엄하시고 야단만 치시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이때만큼은 동료처럼, 친구처럼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와 보낸 경험은, 저에게 많은 시와 소설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작고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과 어눌한 가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저는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뒤로 미루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또 다른 저를 만들어가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련의 일들로 인해 ‘내가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더하여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작가의 길이었고, 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국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 습작 연습을 하는 한편, 대학 선배들의 도움으로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또 다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지식들은 저에게 사회참여와 행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동참하였고, 사회변화에 저의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하였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평등하고 인간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오랫동안 저의 가슴 속에 커다랗게 자리하였습니다.
저의 대학시절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진리’를 찾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작가의 길은 조금씩 멀어졌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진리를 확립하고 실천하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동안 사회과학을 탐구하고 다양한 사회활동들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철학과 역사를 배웠고, 사회학과 다양한 사상들을 접하였습니다. 활동을 통해 맑스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에 대한 신념도 생겨났습니다. 그것들은 그동안의 나를 깨버리는 놀라운 경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많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진실된 것인만큼 가혹한 것이었기에 머리로는 받아들여져도 행동은 실수투성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매번 군대를 갈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군대를 가게 되면 웬지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멈추지 않기로 결심하고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불교철학, 간디주의 등의 세계 철학들은 또 다른 진실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다시 한번 저를 깨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 저는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겨울에 있었던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여러 사람의 의견들도 결심에 이를 수 있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나동혁의 병역거부를 계기로 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병역거부를 준비하였습니다.

2002년 겨울,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꼭 벌여야만겠다는 소식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부시가 세계를 향해 이라크 전쟁을 독려하고 있었고 또 북한에 대해 군사 행동을 해야 한다고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 있는 9·11 테러 유가족들이 이라크에서 ‘자기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뉴스를 목격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테러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지 모를 9·11 테러 유가족들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에 고무되었고, 이라크에서 인간의 물결을 만들자라는 국제반전단체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소위 ‘인간방패’가 되는 것을 감수하겠다며 감성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참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하였고, 그날부터 저는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전쟁 속에서 장애인이 될지도 모르며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생겨났고, 악몽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시에 그 고통을 수십년 간 겪어온 분쟁지역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가슴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눈과 귀는 모두 이라크에 빼앗겨버렸고, 신문을 볼 때나 뉴스를 볼 때도 국제 기사를 먼저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전쟁의 고통’을 감내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일기를 비롯해 각종 생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저분한 방을 청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결심을 알리고 출국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결심은 진심일 수밖에 없었기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결심을 가족들과 주위 분들에게 알리면서부터는 몸과 마음과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역미필자 해외출국 나이 제한 등에 걸려 결국 이라크반전평화팀에 합류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이라크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 때문에, 저는 반전평화팀의 의지와 실천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이라크반전평화팀 지원연대’를 꾸리고 지원하는 일을 맡으면서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무사히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뜬 눈으로 지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터로 가야한다고 결심하던 순간에 일어났던 심장의 떨림과 근육의 긴장, 폭격이 시작되고 전쟁이 발발하던 순간부터 사라지지 않는 초조감, 이라크에 들어가 있는 팀원들의 가족에게서 전화를 받아야만 했을 때의 어려움, 꽃이 피고 한들한들 봄기운이 이 땅을 뒤덮고 있을 때도 사방이 막힌 골방에라도 처박힌 듯한 답답함, 날이 날카롭게 선 채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그때의 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이라크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축적된 짓눌림에 못 이겨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매번 목숨을 전제하고 이야기했던 처절함 때문에 참으로 많은 상처가 생겨났으며 아래로 아래로 무너져가곤 했습니다.
이라크반전평화팀 활동을 통해,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보면서 저는 전쟁과 평화는 양립될 수 없으며, 전쟁과 민주주의도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사력과 폭력의 지배를 억제하는 평화를 향한 길이 진정한 나의 길임을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있는 평화의 신념에 관하여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저는 평화를 향한 걸음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평화가 평등만큼이나 너무나 높은 추상이기에 그러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늘 있어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도 늘 있어 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영역과 이해를 위해서는 전쟁과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인류도 적자생존이나 생존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종족, 민족,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분쟁에서 국가간 무력충돌까지 자연적인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평화는 자연법칙에서 어긋나서 실현할 수 없는 환상일지 모른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도 신빙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생존의 경험들, 그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느끼는 분노와 적대감 같은 감정들, 돈 중심의 사회에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는 차별과 폭력들. 이런 것들이 ‘결국은 인간은 다 똑같이 이기적이다’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듯합니다.

제3세계 인민을 포함한 오늘날의 체제 하의 민중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여전히 핵전쟁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으며, 지구는 파괴되고 있습니다. 노인과 고아, 장애인들의 절대다수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 버려져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국민의 다수가 기아의 고통 속에 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생산자들은 지구의 어떤 곳에서나 여전히 제대로된 시민권조차 없습니다. 한국 역시 세계 체제의 무한 경쟁에 적응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체제가 완벽한 승리로 정리된 것 같은 오늘날, 다른 꿈을 꾸어봅니다. 평화는 안보의 수준이 아니며, 단지 전쟁없는 상태만이 아닐 것입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안정을 지키는 상태가 아니라, 오직 전쟁과 군대를 준비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극히 군사적 긴장 유지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공존과 평등의 차원에서 평화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평화란 모두에게 있어야 할 공기와 물과 햇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범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평화는 위용차고 거룩한 한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들풀들이 서로 손잡고 속삭이면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이라크 전쟁은 고통 속의 인간을 보여주었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반성을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반성은 있었지만 쉽게 극복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은, 분쟁은 국가 간의 이해뿐만 아니라 개인 간에서도,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목도하였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평화에 대한 마음이 일어났던 것은, 세계 모든 질서를 자기 손에 쥐고 있어야 했던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자기와 타인을 차별했던 이기주의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으며 일상에서 체화된 자기 안의 반평화의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수많은 반전평화의 활동들은, 자신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진지한 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세계 질서와의 싸움이면서 곧바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한명 한명이 평화적 존재로, 평화의 증인으로 단련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평화가 삶과 일상의 영역이듯 그 단련 또한 일상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쟁 속에 있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TV를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는 전쟁 만화와 프로그램이 즐비합니다. 전쟁과 폭력이 내면화되어 갖가지 폭력을 무감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길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평화는 자기 만족과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현에 대한 이야기이며 모두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평화는 ‘누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으며, 자기 마음을 열어내고 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소망

저는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향해 총과 칼을 들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간직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과는 관계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젊은이이고자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병역을 거부하게 되지만, 축하를 보낼 수 없는 부모님의 아픔 또한 간직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 공동체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공동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의무를 수행하기를 희망합니다. 분쟁지역에서의 해외봉사활동을 몇 년동안을 해도 좋고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소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좋습니다.

우리가 분노를 분노로서, 미움을 미움으로서, 폭력을 다시 폭력으로서 대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처참하게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의 무서운 분노는 언젠가 터져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전쟁만큼은 용납하지 않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무고한 인간을 대규모로 학살하는 전쟁 그 자체를 거부하며, 따라서 전쟁과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군사훈련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서약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젊은이들이 총 대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전쟁과 가난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자그마한 실천들을 나누는 것을 소망합니다.
함께 이 땅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대화하면서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널리 퍼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 염창근 매체 인터뷰, 기고글

염창근씨의 병역거부

2003년 11월 16일

오수연 소설가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3/11/001000000200311161859036.html

[염창근병역거부를 열렬히 축하함!

2003년 11월 20일

글 정인환 기자/ 사진 류우종 기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3000/2003/11/021013000200311200485026.html

 

병역거부 운동, 7년의 길을 넘어 다시 한 걸음 더 ~

2008년 9월 12일

염창근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Cccu&articleno=17118087&categoryId=502019&regdt=20080912181525#ajax_history_home

 

병역거부로 바뀐 한 청년의 삶

평화바닥 활동가 염창근 씨를 만나다

2007년 5월 9일

강서희 기자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7/20070509/20070509195900.html

 

후세인 사형집행과 폭력의 소용돌이 원하는 미국의 계산

2007년 1월 5일

염창근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ground&page=2&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염창근&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양심적 병역거부이제 국회의 몫이다

병역거부자 염창근 씨 재판, 국회 회기 끝날 때까지 연기

2004년 9월 22일

임세환 기자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1/20040922/20040922174100.html

 

누군가는 무기를 버려야 한다

병역거부자 염창근 씨가 평화를 생각하는 법

2004년 12월 1일

강서희 기자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7/20041201/20041201112600.html

 

평화도서관 이 책을 읽다

 – 무기의 가치와 가치들의 비(非)경합

 – 팽창하는 자기의식이라는 문제, 그리고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걸까?’

 – 버마,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 ‘아이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돌아보며 – 가난한 휴머니즘, 존엄한 가난을 위하여

 – ‘민족의 신화’라는 위험한 유산과 국가주의 – 팔레스타인을 다녀와서

 – 국가가 아닌 땅, 국가를 넘어서는 삶을 그리며

2010년 10월 16일

염창근

http://peacelibrary.or.kr/?_filter=search&vid=&mid=read&category=&search_keyword=%EC%97%BC%EC%B0%BD%EA%B7%BC&search_target=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