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 및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지난 3월 20일 서울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는 “인터넷 상에서 게시판을 통해 병역거부를 선동하며 회원을 모집하는 병역기피조장 사이트 3곳에 대해 전면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찰은 특히 지난 6일 서울에서 사이트를 통해 만난 네티즌들이 병역거부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는 점을 이유로 이 사이트의 운영자와 가입회원들을 적발해 형법의 ‘병역거부단체조직 및 가입죄’의 적용여부를 검토하고, 사이트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측에 통보, 폐쇄 조치시킬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는 우선 경찰의 수사방침이 최근 언론을 통해 징집제의 인권 침해적 요소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점차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표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2000년 헌법재판소에서 ‘군복무가산점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이후, 현행 병역제도의 합리적 개혁을 위한 사회 각계의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징집제도 하에서 남성이라면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군대내 폭력과 의문사문제, 군복무여부를 기준으로 여성과 장애우의 평등한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는 군복무가산점제도의 문제, 병역특례제도를 악용해 병역특례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부당노동과 해고의 문제등, 현행 병역제도가 파생하고 있는 인권침해요소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살상훈련에 참가할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징병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사례가 알려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소수자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바 있고, 이에 따라 징병제의 지원병제로의 전환 혹은 소수자 인권보호를 위한 대체복무제의 도입 같은 합리적인 대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특성으로 하는 몇몇 병역거부관련 사이트들에 대해 경찰이 전면수사방침을 밝혔다는 것은, 결국 징병제의 문제점과 관련한 합리적인 토론 및 사회공론화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시킨 것이며, 이는 인권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매우 반인권적인 조치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번 경우와 같이 병역거부와 관련한 개인의 생각이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표출되는 현상은 인권보호 및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에 대해 경찰과 언론이 자의적으로 과잉 해석하여 ‘반사회적 범죄’로 몰아가는 지금의 분위기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하 양심적 병역거부권)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30여 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동독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1949년에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였으며, 징집제를 부활시킨 1959년 이후에도 “국가간의 어떠한 무력분쟁이라도 이에 거부하는 사람”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하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민간대체역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도 이미 작년부터 사회역이라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 사회복지차원에서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권리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유엔 인권위원회 또한 여러 차례 인간의 기본권리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도의 마련을 결의한 바 있으며, 회원국들이 이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는 중이다. 글머리에서 밝혔듯이 한국에도 이미 여호와의 증인 같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1500여명에 달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종교적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이와 같은 양심상의 결단, 혹은 인도주의적 결단을 지킨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보통시민으로조차 대우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병역거부와 관련한 논의를 단순하게 ‘의무를 방기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권적 차원에서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지어 현행 징병제의 문제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극복해갈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인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징병제 관련 사이트에 대한 경찰의 자의적인 ‘반사회적 범죄’ 규정 및 과잉 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하나, 경찰은 징병제에 대한 자의적 판단에 근거한 현재의 강제 수사 입장을 즉각 철회하라!
하나, 경찰은 징병제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주장과 논의에 있어 ‘자유로운 토론 및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나, 국회는 징병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형법 114조 2항을 개정하라!
하나, 징병제 자체의 개선방향에 대한 국회논의를 시작하라!
2001. 3. 22.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보안관찰법 철폐모임,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 대학생 교육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평화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