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녹색당원)
“트월킹은 인류에게 좋다”.
Twerking is good for humanity.
팝 아티스트 리조가 테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웃기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트월킹은 정말로 인류에게 유익하다.
베를린을 여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아나키스트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크로이츠베르크에 갔다. 거기엔 베를린의 활동가들이 스쾃(무단점유)을 한 건물이 있었다. 곳곳에 사회 운동 메시지가 프린트된 스티커, 그래피티, 온갖 집회 홍보 포스터로 범벅이 되어 있어 계단과 복도마다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베를린 활동가들의 공간 ‘New Yorck im Bethanien’의 3층 복도
고백하자면 그날 참여한 행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영문 모를 댄스뮤직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생활댄스인이다. 일 주일 이상 춤을 추지 않으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다. 옆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묻자 행사 주최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글쎄. 춤을 추는 것 같던데.”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벽을 통해 전해지는 옆 방의 리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둠칫둠칫, 댄스홀(자메이카의 레게를 뿌리로 하는 댄스음악 장르) 같기도 하고. ‘재밌겠다. 저기로 가고 싶다.’
행사가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거렸다. 옆 방의 파티 뭐 비슷한 게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굳게 닫힌 문 뒤로 어떤 공간이 펼쳐질 지도 궁금했다. 한참을 서성이다 이제 그만 자리를 뜨려는 찰나, 드디어 문이 열렸다.
“헉.”
온갖 색깔로 화장을 한 여자들, 망사 스타킹부터 카모플라주 카고팬츠까지 가지각색의 차림새를 하고선 땀에 푹 젖은 여자들이 기분 좋은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 황홀한 얼굴을 하고서 복도로 쏟아져나왔다.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저기 있잖아..~ 너네 거기에서 뭐 했어?”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트월킹.”

트월킹 연습 모임이 끝나고 난 뒤
그러니까, 저 수십명의 여자들이, 저 좁은 공간에서, 근 2시간 동안, 트월킹을 하는 모임이었던 것이다. 트월킹이 뭐길래. 트월킹이 대체 뭐길래.
트월킹이 뭐냐면, 엉덩이를 튕기는 춤 동작이다. 반복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엉덩이를 위아래로 터는 것을 말한다. 보기에는 엉덩이를 흔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등허리부터 뒷벅지, 햄스트링과 아킬레스건까지를 요령있게 사용해야지만이 보기좋고 커다랗게 튕길 수가 있다.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엉덩이와 허벅지에 적당히 살이 붙어계셔야 살이 출렁이는 반동을 통해 특유의 리듬이 강조된다. 이러한 조건을 수반하지 못하면 ‘트웕 트웕’보다는 ‘깔짝 깔짝’이 되어서 뒷 사람을 약올리는 짱구 정도로 보이고 만다.
트월킹의 유래를 찾아보다가 서아프리카의 춤이 그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코트디부아르의 전통춤, 마푸카Mapouka가 트월킹의 시초로 꼽히곤 한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주로 빠르게 흔드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리랑이 들려올 때 남녀노소 양팔을 얼쑤절쑤 젓는 정도의 대중성을 지닌 일상적인 춤 동작이라고 보면 된다(DNA에 녹아있다는 뜻 되시겠다). 마푸카는 예로부터 여성을 위한 춤이었고, 기쁨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신과 접속하는 방식으로써 쓰여왔다.
서아프리카 여성들의 전통춤이 성적인 코드로 읽히기까지 유쾌하지 않은 문화적 개입이 있었다. 마푸카에서 유래된 트월킹은 아프리카를 뿌리로 하는 미국의 흑인 여성들이 친구들과 클럽에서 즐기는 가벼운 춤동작으로 이어져왔다. 트월킹이 전세계적인 현상으로써 유행으로 번진 것은 2013년 쯤 마일리 사이러스가 콘서트와 뮤직비디오에서 트월킹을 하고 나서부터다. 여성 뮤지션이 무대에서 자유롭게 섹스어필을 하는 데에 트월킹이 ‘사용’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주체가 백인이었기에 문화적 전유(도용)가 일어나고 말았다. 흑인들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백인에게 ‘채택’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아주 단면적으로 각광을 받는 일이 되풀이된 것이다.
언론과 대중문화 비평가들은 트월킹을 두고 ‘여성을 착취한다’ ‘성적대상화를 한다’ ‘저속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역설적으로 트월킹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이러한 비난으로 인해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열풍은 한국에도 닿아 퀸와사비의 “안녕 쟈기, Let me shake that booty”를 기점으로 하여 (여자)아이돌의 ‘퀸카’ 안무 등 케이팝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베를린에서 집단 트월킹 모임을 하고 땀범벅이 된 여자들을 마주친 이후로, 트월킹의 힘을 몇번이고 생각하게 되었다. 개운한 얼굴로 연습실 문을 나서는 여성들의 에너지가 몹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트월킹 모임이 어떤 배경과 목적으로 열렸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설명을 듣지 않은 것이 좋았다. 혼자 더듬어 생각해낸 트월킹의 핵심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그러니까 저 여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엉덩이를 흔들었다는 거지? 트월킹이라는 것은 곧 “내 엉덩이는 내가 흔들어”라는 거지?
춤을 같이 추는 지인 중 SNS에 트월킹 연습 영상을 수시로 업로드하는 사람이 있다. 미디어에서 트월킹을 접한 이후 그 놀라운 동작을 따라해보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배울 수가 없어 혼자서 골반을 컨트롤 하는 방법을 익혔다고 했다. 자타공인 트월킹 마스터가 된 그는 최근 서울과 부산을 넘나들며 트월킹 클래스를 열고 있다(인스타그램 @vievv.kr). 수업 수강권은 매번 매진이다. 전국의 여자들이 엉덩이를 튕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갈증이 있다는 반증이다. 뒤로 돌아 보란듯이 엉덩이를 쭉 빼는 것이 쑥스러워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사람들도 이내 골반을 튕기는 기술을 터득한다. 타고난 엉덩이를 보란듯이 흔드는 서아프리카 여성들과 수업까지 들어가며 골반을 움직일 용기를 얻는 한국의 여성 사이에는 어떤 모양의 간극이 있을까.
퀸와사비가 방송 무대에서 엉덩이를 튕기자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패널들의 얼굴에 난처함이 깃드는 것을 보고 깔깔 웃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그건 해방감이었다. 남의 몸을 눈으로 구석구석 훑으며 훔쳐보던 남성들로 인한 불쾌함을 뒤집어버린 채 오히려 “내 엉덩이 볼래?”하며 난잡하게 몸을 출렁이는 행동에는 단언컨대 대단한 훈련이 필요하다. 골반을 튕기는 힘에는 성엄숙주의를 부술 용기와 춤으로 응수하겠다는 도발이 엉켜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트월킹이 갖고 있는 익살스런 힘이 전해지길 바란다. 유혹하는 엉덩이가 아니라 도발하는 엉덩이로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경험이 다른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이 글은 리조가 테드 강연에서 나누어준 이야기를 다수 참고했다. 트월킹의 유래를 알고 싶어 조사를 하던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였다. 그의 강연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을 소개한다.
“(내가 트월킹을 하는 건) 섹슈얼하기 때문이에요. 성적으로 대상화 되고 싶다는 게 아니고요.”